본인 선정 2022년 올해의 소설

지금 나에게 인생 최고의 소설을 물어본다면 ‘슬픔이여 안녕’이라고 곧바로 대답할 것이다. 문학이란 수능 국어 영역에서만 보았지, 줄곧 논픽션만 읽었던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1955년에 어느 프랑스 작가가 쓴 책에 푹 빠졌을 줄이야. 하지만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이후로 이 소설을 세번이나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유도 모른 채 이 소설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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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나도 휴가 중에 해변에서 이 책을 읽어보았다.

작품보다 작가 때문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읽어보게 된 배경에는 작가 때문이었다. 프랑수아즈 사강, 그녀는 평생 속도, 알콜, 마약 그리고 성(性)을 사랑했다. 그녀의 약력 아닌 약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엷여덜살에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이 대박남. 번 돈으로 재규어 XK140 스포츠카 구매.
  • 애스터 마틴을 타다 사고나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목숨을 건짐.
  • 치료 중 처방받은 모르핀에 중독. 그 후로 계속 약물에 빠짐.
  • 이번엔 도박에 눈을 뜸. 프랑스 전역의 카지노 업장에서 출입금지를 당함.
  • 결혼, 이혼, 재혼에 아들 하나가 있음.
  • 코카인 소지 혐의로 기소됨.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명언 남김.
  • 전 프랑스 대통령하고 연인 이상의 관계였다고 공공연히 알려짐.
  • 탈세 혐의로 재산 압류. 집행유예 선고 받음.
  • 69세의 나이로 심장병, 폐 질환의 여파로 사망.
  • 죽기 직전 까지도 왕성하게 작가 활동을 했음.

이러한 그녀의 불꽃같던 삶 때문에 그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작가로 알려져있다. 사강에게 미안하지만 나도 그렇다. 사강이라는 사람에게 끌려서 그녀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던 중 첫 소설이라 기대도 안하던 ‘슬픔이여 안녕’을 읽게 되었다. 사강의 소설 중에서 최고였다. 데뷔작이 커리어 하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반했다.

사랑과 슬픔 사이

이 소설의 결론을 사랑과 슬픔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하루 빨리 ‘슬픔이여 안녕’에 대한 리뷰를 남기고 싶었지만 리뷰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인생 최고의 소설이기도 하겠다, 그래서 다시 한번, 또 한번 읽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사랑?

사랑이라는 주제는 이 소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 답게 주인공 세실의 생각과 감정들이 경이로울 정도로 아주 치밀하게 묘사되어있다. 이러한 세실의 관점에서 아버지, 안, 엘자 그리고 시릴의 사랑을 바라보고 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실이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선명하게 그려지게 된다.

그 사랑들 중에서도 안의 사랑과 세실의 사랑은 완전히 대비된다. 말투와 행동을 넘어 존재 자체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 둘의 존재는 전반적인 이 소설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 또한 사랑을 중심으로 풀어가는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슬픔?

슬픔이라는 주제는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주인공 세실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액자식 형태를 띄는 이 소설에서 ‘슬픔’에 대한 언급은 맨 처음과 맨 끝에 등장하며 합쳐서 열줄 남짓의 분량이다. 하지만 사강의 회고록에서 이 소설의 줄거리를 설명할 때 ‘이야기는 그 감정(슬픔)에 대한 토로로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p.11

고민 끝에 나는 이 소설을 ‘슬픔’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소설에서 소재의 분량과 중요성은 항상 같지만은 않다. 소설의 문체 보다 주제에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결혼 발표

이 소설의 1부와 2부를 가로지르며 처음으로 등장한 극 중 반전은 세실의 아버지가 안과 결혼하겠다는 발표였다. 저 말을 들은 세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세실은 아버지의 자유로운 연애관이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세실은 자신의 아버지를 ‘경박하지만 책임감있는 아버지’로 평가하고 있다. 그녀가 볼 때 자신의 아버지는 자유로운 돌싱남 라이프를 살면서 쾌락과 변덕을 즐겼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연애보다 딸을 먼저 챙기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를 마음에 들어하던 세실은 자신이 생각하던 사랑도 아버지의 연애관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연애를 나보다 앞세우지 않았다. (중략) 아버지가 자신의 쾌락과 변덕과 쉬운 삶에 몸을 맡겼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p. 161

그런 아버지가 결혼을 결심한 것에 대해 세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여러 여자들과 연애하는 것은 오히려 장려했지만, 한 명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은 반대했다. 자유로움과 독립성을 추구하는 세실 입장에선 결혼이라는 것은 속박이었다. 권태와 평온함을 추구하려는 아버지의 결정에 대해 세실은 이를 탐탁치 않았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에, 속박에 그토록 완강히 반대하던 아버지가 하룻밤만에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아버지의 결혼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터였다. 우리는 독립성을 잃게 되리라.
p. 67

세실은 결혼이라는 이 사태에 대한 주범을 안으로 규정한다. 고고하고 품위있는 안이 자유로운 돌싱남인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그녀는 작전을 세우게 되는데, 우선 아버지의 옛 연인 중 하나가 다른 젊은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버지를 자극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연인과 다시 연애하고 싶어지게 만들어서 결혼 계획을 취소시키겠다는 큰 그림이었다.

무너져버린 안

이 소설의 또 다른 반전은 바로 세실이 울고 있는 안을 발견한 장면이었다. 아버지를 유혹하는 세실의 작전은 성공했다. 아버지는 옛 연인과 비밀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세실 또한 태평하게 쉬고 있었다. 그 때 그녀는 저 멀리서 안이 울고 있는 채 휘청거리면서 뛰어가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세실은 놀라서 안을 따라갔지만 차를 타고 떠나버린 안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제야 안은 얼굴을 들었다. 여느 때의 모습은 간곳없이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안은 울고 있었다.
p. 174

세실이 울고 있는 안의 모습에 충격받은 이유는 그녀가 평소 생각하던 안답지 않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세실은 안을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안에게 그녀 자신과 그녀의 아버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품위있고 까칠한 안의 태도를 세실은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속으로는 그녀를 이상적인 여성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신인류 같아보이던 안이 우스꽝스럽게 울고 있는 모습을 세실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마흔두 살의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에 아주 매력적이고 세련되었고, 도도하고 지친 듯 하며 주변에 무관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비난할 만한 점은 그 무관심뿐이었다. 안은 사랑스러운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녀에게서는 의연한 의지력과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드는 진정한 차분함이 풍겨 나왔다.
p.17

이 상황을 세실의 입장이 아닌 안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만하다. 사강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안이 울고있는 장면을 이 소설 속 특별한 순간이라고 칭하면서 언급하길 ‘안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한낱 정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 라고 말했다. 세실이 안을 신격화해서 그렇지 안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자 여자였다.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연애만 하다가 결혼까지 결심할 정도면 얼마나 세실의 아버지를 사랑했을까. 그 정도로 마음을 주었던 그 남자가 다른 여자랑 바람피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 때 받은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할 정도였을 것이다.

결론: 전에 모르던 감정, 슬픔

이야기의 끝

충격받은 안은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빈번하게 사고가 일어났던 곳이라 안타깝게 여기기만 한다. 안의 장례식까지 마무리하고 세실과 그녀의 아버지는 한동안 집안의 어머니를 잃은 가족처럼 침울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금 각자의 사랑을 시작한다. 다시 예전처럼 지내던 중 세실은 문득 안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때 그 감정을 ‘슬픔’이라고 이름 붙였다.

안! 안!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p. 186

나에게 부모님이라는 존재

이 소설을 몇번 다시 읽고 나서야 세실이 느낀 슬픔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그녀는 안을 떠올릴 때 가슴 속 솟아오르는 감정을 느꼈다면, 나는 우리 부모님을 떠올릴 때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어릴 적 나의 주적은 우리 부모님이었다. 하고 싶은 거 마음 껏 못하게 하고,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못먹게 하고 맨날 잔소리 투성이었다. 그 때는 어린 마음에 떼도 써보고 반항도 해보고 부모님께 못 해봤던 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내 부모님은 나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한 그런 존재가 되버렸다. 예전에는 내 인생에 영원히 참견할 것 같던 분들이 지금은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렸던 내가 생각하던 부모님이란 존재와 지금 당신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아마 조부모님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기력이 너무 쇠약해지져서 밤마다 병수발을 들러 가시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 속은 복잡해보인다. 그걸 손자인 내가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내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한다.

그 묵직한 이름, 슬픔

세실에게 안은 자신과 다른 우월한 부류의 사람임과 동시에 항상 자신과 갈등이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그리고 안이 자기 아버지의 부인이 된다는 것, 즉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일을 경계했다. 세실은 그녀를 자신과 아버지로부터 밀어내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안은 그들에게서 아주 멀리 멀어졌다. 바로 죽음까지. 그리고 세실은 안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속 무언가를 처음 느끼게 된다.

절대적일거라 생각했던 존재, 나와 항상 대립했던 존재. 나와 그 사람의 관계는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관계가 끝나고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었다. 그는 나를 지켜주었고, 나는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 그 관계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에 이렇게 인사할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