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게 80년 5월의 광주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광주에게 5.18은 실로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광주와 5.18에 대한 몇 가지 TMI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광주는 그런 곳이다. 광주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하면 사회배려자와는 별도로 5.18유공자 TO나 가산점이 있는 경우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보다 전시 면적이 넓다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맨 앞에 ‘5.18 최후항쟁지, 옛전남도청’이라고 두꺼운 빨간색 글씨가 적힌 오래된 건물이 서있다. 학교 음악 시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를 나눠주고 이를 오카리나나 리코더로 연습한다. 아주 지독할 정도로 광주는 5.18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도시에서 자랐음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5.18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때가 있다.

왜 망설였을까

2015년 제 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우리 고등학교 학년이 참석하게 되었다. 비 오는 날이라 버스에서 우비를 입었고,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다는 말에 선생님들이 일일이 학생들 복장 점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기념식에는 국무총리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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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주년 5.18 기념식. 뒷 쪽에 흰색 옷을 입은 무리가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이다.  /  출처: MBC

당시 5.18과 관련된 화두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제창 여부였다. 합창단원들만 부르는 ‘합창’과 달리, ‘제창’이란 애국가처럼 참석자 전원이 일어나 부르게 된다. 시민단체는 5.18 정신을 계승하고 고취하고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자고 요구했지만, 당시 정부는 유권 해석에 공식 입장까지 내 놓으면서 합창하기로 못을 박았다.

자리에 앉고 기념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중 어떤 시민단체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태극기를 일일이 나눠주었다. 그러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때 일어나 노래를 불러달라고 우리들에게 부탁했다. 이미 중학교 때 가사를 배우고 온 터라 노래를 부르는건 일도 아니었다.

기념식 막바지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순서가 다가왔다. 사회자가 ‘합창’한다는 말에 우리 뒤에 있던 일반 시민 객석이 발끈하는 분위기였고 다들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에 있던 정장을 입은 분들 대부분은 앉아계셨다.

그렇게 전주가 시작되었고 우리들은 손에 태극기를 쥔 채 어쩔줄 몰라했다. 그저 두리번 거리며 소란스러워진 장내의 분위기만 살펴볼 뿐이었다. 첫 소절이 시작되려는 찰나 태극기를 나눠준 그 분께서 우리 쪽으로 최대한 허리를 숙이며 달려오셨고, 일어나라는 손짓과 함께 ‘다들 일어나주세요’ 속삭이듯이 외치며 지나가셨다. 그제서야 우리는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고, 노래가 끝날때 쯤에는 기념식장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있었다.

노래가 시작되고 일어설 때까지의 그 찰나가 잊히지 않는다. 그때 나는 왜 망설였을까. 당시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합창과 제창으로 왜 갈등하는지 이유도 알고 있었다. 불과 몇 십분 전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노래가 나오면 일어서서 따라 부르라고 부탁도 받았다. 심지어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일어설 거란 것도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다 알고 있었고 나는 망설이기만 했다. 태극기는 왜 손에 쥐고 있었나 싶다. 부끄럼만 탔던 내 양심이 아직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읽게 된, 쓰게 된 계기

소설 ‘소년이 온다’를 처음부터 읽으려 했던 건 아니었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리뷰를 위해 정보를 모으던 중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함께 그 소설을 다룬 ‘2023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비평문을 발견했다. ‘시선으로부터,’ 리뷰를 저 글처럼 문학적 비평 형식으로 풀어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선작 답게 현란하고 현학적으로 써진 글이라 절반 이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이유도 컸기 때문에 우선 그 소설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소년이 온다’의 연장선상이라는 그 비평문의 말에 도서관에서 두 권 모두 빌렸다. 일단 ‘작별하지 않는다’부터 읽었다. 초반부터 작가의 고통스러운 심리가 묘사되는데, 읽다보니 ‘소년이 온다’를 쓸 때의 감정인 듯 싶었다.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가운데, 나는 작가의 심정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책을 덮게 되었다. 우선 ‘소년이 온다’를 통해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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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년이 온다.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했다.  /  출처: YES24

에필로그에는 이 작품을 쓰는 계기가 나와있었다.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80년 5월이 되기 얼마 전에 서울로 이사왔다. 명절 때마다 친척 어르신들이 ‘그 사건’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엿들었고, 10살 때 아버지가 구해온 사진첩에서 잔혹하게 으깨어진 여자얘의 주검이 뇌리에 박혔다. 시간이 흘러 작가로서 한창 작품을 써내려가던 중 자신의 진척이 막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곳에 광주가 가로막고 있었음을 작가는 깨달았다.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엄연히 그러할 뿐 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5.18은 보통 주제가 아니다. 소설 ‘봄날’이나 웹툰 ‘화려한 휴가’, ‘26년’ 그리고 영화 ‘택시운전사’까지 다양한 매체와 장르로 다루어진 소재이기도 하다.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많은 선배작가들이 오월 광주를 형상해놓은 탓에 더 이상 광주에 대한 소설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소재의 선택도 그렇고 무엇이 작가 한강을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쓰게 만들었을까. 악몽을 견뎌내는 고통 속에서 소설을 완성시킨 그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아직 나에게 와닫지가 않았다.

양심의 크기

양심이 있고 없고에 관한 차이는 명확히 나타난다. 다만 모호한 점은 사람마다 양심의 크기가 다른 것이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누군가는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유신정권 아래 누군가는 민주화를 위해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했다. 분명 이들의 양심은 보통 사람의 것 보다 큰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위대함으로 잴 수 있는 양심이 있는가 하면, 부끄러움으로 잴 수 있는 양심도 있다. 군사정권 하에서 누군가는 옹졸한 자신의 소시민적 태도를 자조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몇 십억도 아니고 몇 천만원 받은걸로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는 부끄러운 양심과 위대한 양심이 공존한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진 친구 ‘정대’를 두고 혼자 도망갔다는 죄책감에 끝까지 도청에 남았던 중학생 ‘동호’가 제목의 그 소년이다. 그와 그 주변의 사람들, 죽거나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게 이 소설이다. 이야기 전반에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부끄러움이 깔려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것이 결코 부끄러운 양심이 아니라 위대한 양심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느낄 수 있다.

작가 한강의 양심으로 돌아가보자. 이 소설을 쓰기로 한 계기에는 부끄러움이 제일 컸을 것이다. 작가라는 직업인으로서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 인상을 가만히 덮어두는 대신 이를 끄집어내고자 결심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소설은 위대한 양심이 되었다.

잊히지 않는 소년

‘왜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끔 스스로에게 할 때가 있다. 세상에는 외워야 할 숫자들이 너무 많다. 2.28, 3.1, 3.8, 3.15, 4.3, 4.11, 4.19, 5.18, 6.25, 10.16 등이 행안부에서 법률로 지정한 숫자들이다. 여기에 4.1610.29도 빠져선 안 된다.

작가 한강은 이 질문에 대해 답변보다는 반문을 했다.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바로 어떤 당위적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읽은 독자들애게 5월 광주의 한 소년이 잊히지 않길 바라고 있다.

각 장마다 서로 다른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대상은 첫 장의 주인공 ‘동호’라는 소년이다. 그는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평범한 아이다. 상무관에서 참혹한 시신들에게 흰 천을 덮어주고 그 머리맡에 초를 밝히는 일을 했다. 주검들을 바라보며 영혼들은 어디로 갈지 생각하는 섬세하고도 여린 성품의 아이를 작가는 독자를 향해 보낸다. 죽은 자, 살아남은 자, 고통받는 자, 마지막엔 이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까지 여러 목소리들을 통해 그를 그려낸다.

이제 ‘동호’라는 소년은 기억해야 할 대상이 아닌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5월만 되면

계엄군이 도청을 점령한다는 그 새벽, 어떤 여자 목소리로 시내에 방송이 나왔어.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다, 우리 모두 끝까지 싸우자,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 그런 내용으로.
그 새벽 광주에서 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거야. 모두가 그 목소릴 들었지. 나도 이불 속에 숨어서 그 방송을 듣고 있었어.

지금은 좀 괜찮아졌는데, 5월만 되면 귀에서 자꾸 그 소리가 들려.

고2때 영어 선생님에게 들었던 저 마지막 문장이 5.18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2016년 5월 18일 그 날 우리 반은 아주 지능적으로 수업 진도를 지연시키기 위해 수업 전 선생님들에게 5.18 때 어땠는지 물어봤다. 매 수업시간 마다 각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저 영어 선생님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 분의 성함이 가물가물한데도 말이다.

5.18 당일에 일찍 수업이 끝나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중 총을 든 군인들이 버스를 막아세우고 모든 사람들을 내리게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남자들을 한 줄로 세우고 무릎 꿇게 만들더니 갑자기 한 명씩 포승줄로 묶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 사람들이 차례차례 묶이던 중 선생님 바로 앞 어떤 젋은 사내가 갑자기 일어나 도망갔다. 주변의 모든 군인들이 그를 뒤쫓아가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 선생님은 반대 방향으로 뛰어 도망쳤다.

무사히 살아서 집에 돌아온 선생님은 단 한번도 밖에 나가질 않았다고 한다. 군인들이 집에 들이닥쳐 불시검문을 한다는 말에 대부분의 시간을 옷장 속이나 이불 밑에서 지냈다고 한다. 저 방송이 있던 날을 끝으로 선생님은 다시 밖을 나섰다고 한다.

결국 영어 선생님은 저 방송에서 ‘잊지 말아달라’라는 부탁을 들어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부탁을 거절하기까지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 정도면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잊지 못했다고 본다. 선생님 귀에서 들린 그 소리는 죽은 영혼의 울부짖음 보다 살아있는 자의 고해성사에 가까웠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데, 오히려 반대다. 그건 그 말이 안들리는 사람이나 하는 소리다.

5월만 되면 귀에서 자꾸 그 소리가 들려.

나도 5월만 되면 선생님처럼 이 이야기가 머릿 속을 맴돌 것만 같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