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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은 CPU, 처음보는 그래픽카드 그리고 두 개의 4GB RAM. 요즘 찾기 어려운 성능인 이 컴퓨터는 나의 첫 데스크톱이다.

데스크톱 없어도 되던데

컴퓨터 잘 몰라요

중학교 때 까지 부모님께 혼나가면서 PC방을 가던 게임중독이었지만 지금은 게임을 거의 안 한다. 내가 했던 모든 게임에서 나는 항상 평균이하의 실력이었고, 들인 시간에 비해 초라한 전적은 게임과 나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이 고등학교 졸업이나 군대 전역에 맞춰 쾌적하게 게임을 즐기고자 컴퓨터 견적내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할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붙잡고 복잡한 스펙표를 읽으면서 부품의 성능을 꼼꼼이 가늠하고, 가성비는 물론 자신의 취향 따라 골라서 필요한 부품을 모으는 모습. 나에겐 그저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개발은 할 수 있더라

군대에서 나는 개발하는 보직이었고 주변에 컴퓨터 전공인 뛰어난 선후임들이 사이에 있었다. 대학교 1학년만 마친 미숙한 실력의 내 입장에서 지금이 개발실력을 기르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컴퓨터라곤 사이버지식정보방 밖에 없는 군대에서 어떻게 개발을 할 것인가에 대해 주변에 많은 조언을 구했고, 역시나 다양한 개발환경구축 경험담과 많은 선택지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가용성과 안정성이 보장되고, 더욱이 $100 무료 크레딧이 제공되는 Google Cloud 를 통해 리눅스 환경부터 차근차근 개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클라우드만 쓸 줄 알았지

부족하지 않은 성능의 Virtual Machine(VM), 언제 어디서든 필요할 때 조작 가능한 Console, 수많은 네트워크 설정과 보안이슈들을 클라우드가 알아서 해결하니 너무 편했다. 하지만 Google Cloud의 무료 크레딧은 3개월까지 누릴 수 밖에 없었고 AWS 를 거쳐 Azure 으로 무료체험을 찾으러 떠났다. 그 여정은 참으로 험난했다. AWS는 무료 사용자들에게 야박한 성능의 VM만 제공했고, 나는 거기에서 30분마다 재부팅하면서 고되게 개발했다. 그 후에 이용한 Azure 에서는 무료 크레딧을 제공한다길래 기대했건만 Console 부터 네트워크, 디스크 용량까지 모든 것에 시간당 가격을 매겼기 떄문에 크레딧 줄어드는 속도에 쫓기면서 개발하느라 힘들었다. 다시 Google Cloud로 돌아가려니 그 때 사양대로 쓰려면 하루에 3,500원 정도를 내야한다고 한다. 고민의 기로에 서는 순간이었다.

탈 클라우드

온디멘드(On-Demand)로 가자

클라우드를 고집하려던 건 전략적 차원이었다. 요즘 IT시장은 클라우드가 대세이다. 스타트업 같이 비용을 걱정하거나 확장을 염두하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클라우드에 관심이 갈 것이다. 게다가 이미 IT인프라를 운영하고 있는 여러 기업들이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추세고, 정부에서도 공공클라우드 사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클라우드를 도입하는 상황에서 나는 클라우드에 먼저 익숙해져야 할 필요성을 먼저 느꼈다. 그러나 막상 비용의 벽에 다다르고 나니 클라우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민의 결론은 고민

내가 빌게이츠였다면 그냥 생각없이 클라우드를 쓰고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주변 친구들에게 이런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니 친구들은 이참에 데스크톱을 맞추는 걸 권유했다. 컴퓨터가 필요한 나의 상황도 그렇고, 전역도 했겠다, 그래픽 카드도 역대급 가성비로 나왔겠다(RTX 3000)라고 말하면서 여러 친구들이 즉흥적으로 견적을 내 주었다. 비용을 얼추 들으니 돈이 모자라는 건 아니었지만, 데스크톱에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기엔 그리 내키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결정을 유보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다 데스크톱을 그냥 빌려주겠다는 친구가 나타났다.

결론은 즉시전력감

그 친구는 분리수거장 속에서 버려진 데스크톱을 발견했고, 큰 문제없는 상태라 쓸만한 부품 이것저것을 더 붙여서 작동이 되는 데스크톱 한 대가 있다고 했다. 물론 버려진 제품이니 사양은 요즘 데스크톱스럽지 못 하다. 쓰는 데 불편한 수준의 성능이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클라우드나 다른 데스크톱 중에서 지금 당장 부담없이 사용 가능한 선택지는 이것 밖에 없었다. 흔쾌히 빌려주기로 한 그 친구에게 감사의 접대식사를 마련한 뒤 데스크톱을 받았다. 초기비용 없이 시작하는 방법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의 구상

나만의 유비쿼터스

데스크톱을 클라우드 처럼 쓸 생각이다. ssh 포트 열고, SSL 적용해서 터미널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내 데스크톱으로 개발을 할 생각이다. 어쩌면 이런 나의 행동은 클라우드가 잘 어울릴 수도 있지만, 돈 빠져나가는 속도가 무서워서 클라우드 서버 한 번 못 키고 살 거면 차라리 내가 직접 장비를 가지고 있는게 더 낫겠다 싶다. 윈도우 컴퓨터에서는 WSL2로 우분투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상관없고,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아이패드를 들고 카페에 가서 code-server에 접속해서 개발하는 것이다. 아이패드 OS도 맥OS와 견줄 정도로 멀티태스킹이 편하게 되어있고, 가벼운 모바일 디바이스이니 가벼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윈도우가 아닌 리눅스

데스크톱 운영체제는 처음부터 리눅스로 가려고 한다. 애매하게 윈도우 설치해서 WSL2이나 VM에서 서버를 운영하는 것 보다는 처음부터 그냥 리눅스로 시작하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아직 OS나 네트워크에 대해 잘 몰라서 윈도우가 가져다주는 숨겨진 역할들을 내가 과연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는 셈 치고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