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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2022년 베스트셀러라서 읽은 책이다.  /  출처: Yes24

한 번으로는 부족해

이 책은 리뷰를 쓰기 전에 두 번 읽었다. 나는 평소에 책 한번 쭉 읽은 다음에 리뷰를 쓸 때 뒤적거리며 다시 읽는다. 하지만 이 책을 파악하는 건 한번 만으론 부족했다. 책의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뒤적거리면서 보다간 더 이해가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찾아보니 이 책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부러 길을 잃게 만들었다고 한다. 저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독자를 분류학, 심리학, 실존 철학 등 낯선 소재의 롤러코스터로 안내하고 싶었다” 라고 나와있었다. 하긴 나도 이 책을 수필인건가 자서전인건가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리고 책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서도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와 공감이 갔었는데, 몇 챕터를 지나다보면 선뜻 공감하기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도 등장했다. 책이 끝날 무렵에 초반 부분과 엮어서 생각하려 했지만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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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룰루 밀러. 저자의 여자친구와 언니가 등장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  출처: 한국일보

두 번째 읽을 때는 내용이 좀 알아먹기 시작했다. 내용의 변주가 저자의 의도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책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결론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가 초반부 곳곳에 독자들을 착각에 빠뜨리려는 작가의 함정들도 눈에 띄었다. 어떤 부분은 티 안나게 자그만 덫을 놓았거나, 또 다른 부분은 깊은 땅구덩이를 파서 완만한 언덕인 것 마냥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대놓고 결말을 본문에 적어놓는 대범함도 보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 책을 다 읽는 순간에도 그게 함정인지도 몰랐다. 그만큼 독자들을 몰입시키고, 작가 손 위에 놀아나게 하는 아주 기묘한 힘이 담긴 책 이었다.

고심 끝의 결론

책을 두 번이나 읽었음에도 리뷰의 결론을 내기가 어려웠다. 전에 읽은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책은 2022년 본인 선정 최고의 소설이자 가장 마음에 안 든 리뷰였다. 나중에 인생 더 살고나서 다시 리뷰를 쓸 계획일 정도다. 어쩌다 가장 좋아하는 책에서 그런 리뷰가 나왔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감명받았던 부분과,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별로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금 리뷰를 쓰려는 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책의 상승 국면보다 반전 뒤 하강 국면에 많이 실려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상승하는 전반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슬픔이여 안녕’ 리뷰를 준비할 때와 비슷했다. 그 때처럼 저자의 결론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내 결론을 밀고 나갈 것인가? 이번에는 내가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야기의 기원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목적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갖는 방법을 찾기 위함이다. 줄거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을 따라간다. 그는 당대에 어류의 5분의 1을 발견한 분류학자이며, 스탠퍼드 초대 총장이기도 한 저명한 인물이다. 그의 인생 중에서 저자가 주목했던 대목은 지진으로 인해 그가 수집한 물고기 표본들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순간이다. 당시 저자는 성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남자친구와 이별까지 겪었던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인생에 시련과 절망 뿐이었던 저자의 눈에 평생 수집했던 물고기 표본들이 산산조각이 난 것을 바라보는 데이비드가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건 일이 수포로 돌아간 상황 속에서도 다시 물고기 수집과 분류를 이어나갔다. 그 행동을 본 저자의 눈은 반짝였다. 삶의 희망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던 비결이 무엇인지 저자는 궁금해졌다. 저자 본인도 언젠가 희미한 빛을 발하는 삶으로 돌아가길 소망하며 이 책은 그의 인생을 따라간다.

데이비드 이야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혼돈 속에서도 진리를 향한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 그의 직업은 분류학자로, 아직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지구 상의 모든 생물들을 수집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생물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일에 인생을 바친 그는 스탠퍼드 초대 총장이 될 정도로 과학계에서 영향력있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성공 가도를 달리는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1883년 연구실 근처에 떨어진 벼락은 화재로 이어져 세상에 하나뿐인 물고기 표본들과 그의 연구물 또한 불에 타버렸다. 그로부터 2년 뒤에도 그는 그의 아내를 병으로 잃었다. 1906년에는 지진이 그의 표본들을 무너뜨렸다. 유리 파편과 이름표들이 물고기들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모습은 절망과 혼돈 그 자체였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물고기 하나하나에 바늘로 이름표를 꿰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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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타 조던. 스탠퍼드 초대 총장으로 기억된다.  /  출처: 위키피디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비결은 ‘자기기만’에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스스로 외면하는 것을 말한다. 데이비드는 그의 저서 “절망의 철학”에서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면 할 수록 삶은 허망함뿐이라는 자신의 꺠달음을 고백했다. 이것만 놓고 볼 때 그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지진을 겪고 난 후 썼던 에세이에는 이와 모순되는 내용이 등장한다. 비록 상황은 절망적이나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연의 섭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자연에 맞서 개척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그의 태도가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사다리는 없다

데이비드의 분류학에는 모든 동식물 간에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깃들어있다. 복잡하게 얽힌 생명 간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곧 그에게는 인간의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활동인 것이다. 생물의 외형과 신체 내부, 생활 양식 등을 통해 ‘자연의 사다리’라는 생물 간의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일을 통해 세상의 진리에 다가가려 했다. 자연의 사다리가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은 충격적이게도 우생학으로 이어졌다. 열등한 형질을 관리하지 않으면 인류는 사다리에서 언제든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에 우생학을 최초로 들여온 과학자이자 사회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불임화하는 법에 동조했다. 데이비드는 우생학을 죽을 때 까지도 우생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를 통해 믿음의 이중성을 지적했다. 그의 신념은 그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게 해줌과 동시에 우생학 신봉자로 이끌었다. 모진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물들을 분류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과학계를 비롯한 외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생학을 고집했다. 인류가 소수의 유전자만 가지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불리하다는 사실은 과학자인 그가 더 잘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념을 끝까지 고수했다. 생태계의 비밀을 드러내는 데 그의 분류학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가 찬성한 불임화법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물고기는 없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저자는 어류라는 분류는 없다는 말을 꺼낸다. 물고기들은 겉으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신체구조는 차이가 많이 난다. 이들을 하나의 어류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세상 대부분의 생물들도 어류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다. 데이비드는 세상에 숨겨진 자연의 진리를 드러내는데 인생을 바쳤지만, 그런 진리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데이비드가 수많은 물고기들을 해부하면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저자는 데이비드의 삶을 따라가보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대답

본문 마지막에는 “어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반응이 나와있다. 위의 사실에 대해 연구한 캐럴 계숙 윤은 과학적 사실이 직관과 어긋남으로서 일반 대중들이 환경에 대해 더욱 무관심해지는 것에 대해 걱정했다. 철학자 트렌턴 메릭스는 물고기의 존재를 의심없이 믿어왔던 것 처럼 우리는 아직까지도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그의 말의 이유 중 하나로 삼았다. 생태학자 조너선 밸컴은 물고기에 대한 자신의 연구와 관련해 인간보다 물고기가 인지적으로 훨씬 복잡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전하며 저자는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달라지는 건 없다

나의 결론은 세상에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다.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은 틀렸음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소름이 끼치기 마련이다. 자연의 질서를 찾으려는 데이비드의 노력이 헛된 것임을 발견한 장면이나, 그의 불굴의 태도를 주목했지만 마냥 존경 받을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저자의 모습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모습이 변하진 않는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세상과 지구가 태양을 도는 세상의 모습은 차이가 났던가? 마찬가지로 어류라는 분류체계가 존재하는 세상과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차이는? 만약 이 둘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 세상 속의 나와 이 세상 속의 나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걸까?

혼돈스럽다고 생각하는 세상도 그저 같은 세상일 뿐이다. 어부들은 물고기들을 바다에서 잡아 올리고, 상인들은 시장에서 물고기를 팔며, 나는 고등어나 가자미 같은 물고기를 175도에 20분, 뒤집어서 10분 동안 구울 뿐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