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베스트셀러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책이다. 이 책 또한 한양대 도서관에 10권이 넘는 책이 있지만 방학이 돼서야 겨우 빌렸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용 말고) 인상깊었던 점들은 다음과 같다.

  • 현대사회가 신성하게 여기는 능력주의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윤리적, 철학적인 견해가 모두 담겨있다
  • 코로나19, 트럼프, 브렉시트 등 최근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도 해설한다
  • 하버드 명강의로 유명하신 분 답게 일목요연한 글의 전개가 돋보인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접한 “피로사회”라는 책이 생각하는 현대사회와 비슷한 시각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자리잡은 요즘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에대한 근거가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

양극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코로나19로 더 심해진 양극화는 전 세계 어느 곳이던 간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회적 문제이다. 세계경제는 전체적으로 올라왔다고는 말하지만 이는 부유한 사람들만의 이야기일 뿐이고, 이전부터 존재해 온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문화적인 차이는 사회집단 간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인생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사회에 대한 불만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평등함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어색한 말이 아니다. 초등학교 사회시간 때 불평등이란 나쁜 것이며,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다. 2022년 현재, 코로나 이후 ‘K자 회복곡선’이라는 전망은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관적인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와 갈등이 불에 타오르는 지금, “능력주의”가 이러한 현상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 문제를 날카롭게 접근한다. 능력주의를 불평등의 해결사가 아닌 근본적인 원인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승자, 그리고 패자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적 계층을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이 있다. 지금의 나는 가난하고 부족할 지라도 열심히 능력을 계발한다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의 나라를 상상하자면 “아메리칸 드림” 으로 대표되는 미국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계층이동성이 중국보다 낮을 정도로 사회계층이 고착화 된 지 오래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권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계층의 벽을 뛰어 넘으려는 사람들은 현실에 막혀 좌절할 뿐이다.

입시비리는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있다. SAT 점수 조작, 체육특기생 청탁, 기부금 등 높은 계층의 사람들은 갖가지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자녀를 명문대로 보내버린다. 여러 정치인들이나 대학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명문대는 소위 “그들”만의 리그이다. 현실을 외면한 채 능력주의의 이상만을 열렬히 옹호하는 세상은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로 “공정”하게 나누었다. 명문대 입학과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그동안 노력한 자기 스스로를 칭찬하며,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간다는 것을 합리화하게 된다. 이에 반해 사회적으로 패자라고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승자에 비해 훨씬 더 적은 이익을 받아들이게 된다.

능력으로 가른 사회계층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부유한 사람들은 보수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라고 하니 이와 같은 선거결과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지자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이러한 정치구도를 판가름 한 것은 무엇보다도 학력이 확실이 구분선이 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극단적인 포퓰리즘을 보인 공화당을 대졸 이상의 사람들이 싫어했고, 반대로 고졸 이하의 사람들이 보수의 정책들을 환영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노동자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민주당 입장에서 크게 한방 맞은 결과는 미국 선거 뿐만 아니라 브렉시트 투표에서도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러한 투표결과를 보고 “우매한 선택”이라고 지적하지만, 저자는 이를 “이유있는 분노”라고 표현한다. 자유시장경제의 가속화와 세계화는 마치 21세기의 당연한 흐름이며 이 사회를 더욱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의 양극화는 부자들을 더욱 더 부자로 만들었을 뿐이다. 세계경제 개방을 통해 자본과 일자리를 유출되었으며 자국 내의 노동자들의 입지는 좁아질 뿐이었다. 그야말로 승자들의 세상인 것이다.

8년 간의 오바마 행정부는 철저히 능력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거의 모든 관료들이 대졸 이상이고, 주요 장관들은 대학원까지 마쳤다. 역대급으로 유능했던 정부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교육만을 꼽았다.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를 보장하였으니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세계화와 급격한 사회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개인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입장에선 충분한 기회를 주었으나 살아남지 못한 개인들에게는 “노력하지 않은 자”라는 누명이 씌워졌다. 이러한 대접을 받은 노동자들의 분노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리 신봉하지 못할 능력주의

저자는 능력주의로 귀결되는 사회에게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당위성과 도덕성이 부족함을 맹렬하게 지적하였다. 그의 주요한 주장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능력은 개인이 노력 밖의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 선하다고 해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능력 만으로 이익 분배의 불평등을 설명하기 힘들다.

그동안 귀가 닳도록 들어왔던 “노력만으로 사회적 계층을 올라설 수 있다”는 약속은 희망고문에 그쳤다. 최상위 계층이 세상의 거의 모든 이익을 차지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능력주의가 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통렬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도덕적, 철학적인 전개에 감탄만 나왔을 뿐이었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를 고치기 위해선 “노동의 존엄성”을 바로 세울 것을 강조한다. 하층민과 상층민을 갈라치고 계층 간 유동성을 일으키는 방향이 아니라 학력과 재화 등에 구애받지 않은 모든 직업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가치있게 여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익의 분배에 관해서는 능력과 자유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공의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져보기를 제안했다.

결론 : 공동선을 생각해볼 때

나는 시장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진정으로 공동체를 위한 일에 더 많은 보상을 부여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 사회가 추구할 만한 공동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혹자는 일렬로 줄을 세울 수 있는 능력주의 대신 논란의 여지가 남을 사회적 합의를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가치 중립적인 것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인 만큼, 가치를 정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사회 모습을 효율성과 효과성 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 대신에 나와 내 이웃에 이익이 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볼 때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