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랑 주제의 영화 과제 특집

  1. 사랑에 대한 순수한 욕망 - 콜미바이유어네임
  2. 계급을 넘어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3. 함부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춘기의 사랑 - 소녀의 세계

나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말은 결혼식 주례에서 빠지지 않는 가르침 중 하나이다. 나는 이 말을 부부라는 특수한 관계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랑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진정한 사랑은 나와 비슷한 상대에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나와는 다른 상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지도 이어서 생각해본다. 미녀와 야수의 절대로 이루어 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랑이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영화 같은 사랑을 우리는 진정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이들이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두 사람의 차이를 현실적으로 극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이별로 이끄는 두 사람의 차이가 미녀와 야수처럼 크고 장대할 필요 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차이도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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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색, 블루 포스터. 영화 주제에서 머리 색깔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출처 : 다음영화

영화 소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영화는 레즈비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랑스 영화이다. 주인공은 15살 소녀 아델과 대학생 엠마로, 평범한 소녀였던 아델이 우연히 레즈비언인 엠마를 만나고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엠마와 더불어 아델은 성장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면서 한때 그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게 된다. 주인공들은 동성애자이지만 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랑은 성 소수자에 국한되지 않은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우연한 첫 만남부터 뜨거웠던 교제 그리고 이별의 순간까지의 여정은 여느 연인이나 겪을 법할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들의 이별은 사회적 위치와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라는 어느 연인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직업의 차이

감독인 압델라티프 케시시에 따르면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동성애나 사랑보다도 사회적 정체성과 계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무리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어도 이들은 서로가 몸담아 왔던 사회적 환경의 차이로 인해 점점 멀어지게 된다. 중산층의 아델과 상류층의 엠마 사이에서 벌어지는 틈은 비단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차이는 직업이라는 사회적 위치의 차이로 나타났다. 아델이 엠마의 가족에게 저녁식사를 초대받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엠마의 어머니는 당시 고등학생인 아델에게 진로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델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닌 직업학교에 들어가 곧바로 유치원 선생님이 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10년 15년 학교 다니는 것이 납득이 안 된다고 설명하며 졸업 후 곧바로 생업으로 뛰어들려는 모습이 나타난다. 반면 엠마는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대학교 4학년 학생으로 등장하며 주요 관심분야는 철학이다. 고상하게 보이면서 추상적인 이상을 향하는 엠마의 직업과 취미 속에서 약간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직장생활을 하려는 현실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아델과는 달리 엠마는 불안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미술가의 길을 택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이상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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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선생님 아델. 일할 때는 매우 지루해보인다. / 출처 : 다음영화

인간관계의 차이

이러한 사회적 위치에서 비롯된 차이는 두 주인공의 인간관계에서도 대비가 나타난다. 안정성을 추구하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아델은 주변인들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다. 고등학생 때 같은 반 무리지어 다니는 여자 동기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성 정체성을 발견하게 전에도 이성에게 먼저 말을 건 적이 없었다. 엠마와 교제를 시작한 이후로 아델은 연인관계에 집중할 뿐 별다른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다. 졸업 이후 유치원 교사로 일을 하면서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자리도 피하는 모습을 보일만큼 폐쇄적인 관계형성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아델과 달리 엠마는 개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성소수자 클럽과 바에 자주 찾아가며 모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집 마당에서 여는 홈 파티에 친구들과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즐기기도 했다. 또한 엠마는 미술계에서도 성 소수자들의 지지 덕분에 인기가 많았으며 그녀의 첫 전시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만큼 직업적으로도 폭넓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엠마의 파티와 전시회에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델은 완전히 즐기지 못 한 채 어색한 웃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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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의 친구들이 모인 파티에서 소개를 받는 엠마. 서로의 클라스가 다름이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이다. / 출처 : 다음영화

커밍아웃의 차이

두 주인공의 인간관계와 연결 지어 그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아델은 철저히 남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고등학생 당시 아델에게 엠마와의 관계에 대해 추궁하던 친구를 상대로 시비도 일어난 만큼 완강하게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부정했다. 그리고 아델이 자신의 가족에게 엠마를 소개할 때 서로 교제하고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자신의 철학 선생님으로 소개하였다. 유치원 교사가 된 후 아델이 자신이 다른 여성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일부러 집 앞이 아닌 근처에서도 내려서 귀가하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엠마는 커밍아웃을 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델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에도 엠마의 옆구리에는 다른 여성이 안겨있었다. 엠마의 부모님께 아델을 자신과 교제하는 상대라고 이야기를 하였으며 저녁식사에 그녀를 초대할 때도 연인의 입장으로 자신의 부모님께 소개하였다. 엠마의 미술작품에서도 나체의 아델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동성애자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성향 차이는 그들의 인간관계 범위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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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만나기 전 엠마. 옆구리에 다른 애인을 끼고 다녔다. / 출처 : 다음영화

사랑의 성숙함의 차이

두 여자주인공을 이별로 이끈 두 번째 차이는 바로 서로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 차이이다. 우선 그들은 근본적으로 사랑의 성숙함이 달랐다. 아델과 엠마가 처음 만났을 당시 그들은 15살 고등학생과 대학교 4학년의 성인이었다. 아델이 혼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의 바에 들어갔을 때 밀려드는 주위의 관심에 당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이를 멀리서 지켜본 엠마가 다가와서 자신의 사촌동생이라며 아델을 지켜주었다. 그들의 미숙함과 성숙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그들이 연인이 되어 하나의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 무게감은 너무나도 달랐다. 교제 초반 미숙했던 아델은 이성과 동성 통틀어서 처음으로 연애다운 연애를 시작한 기쁨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성 정체성을 찾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엠마는 가장 확실한 연인이었을 것이다. 반면 엠마에게 아델은 그저 자신이 교제했던 수많은 여성 중 하나일 뿐이며, 그저 어리고 귀여운 소녀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상대방이 느끼는 그들의 존재감에 대한 차이는 이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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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에 나온 두 사람. 미숙한 아델을 엠마가 리드한다. / 출처 : 다음영화

상대에 대한 태도의 차이

아델과 엠마가 서로에게 하는 사랑은 그 성격 또한 달랐다. 아델의 인간관계에서 보듯 그녀 스스로를 엠마 아래에 두길 원한 만큼 아델의 사랑은 이타적이면서 수동적이었다. 서로 동거하는 동안 엠마가 주최하는 홈 파티가 열렸는데, 장소 세팅과 음식 그리고 샴페인까지 파티의 모든 것들을 아델이 직접 준비했다. 그리고 나서도 파티가 열리는 동안 아델은 틈틈이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사람들에게 음식과 잔을 권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엠마를 위해 모든 짐들을 스스로 짊어지고 뒷바라지하는 그녀에게서 아델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 방식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상대에게 바치는 행위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엠마의 사랑은 능동적이면서 자기중심적이었다. 아델과 처음으로 말을 나누었던 성소수자 바에서도 엠마는 아주 익숙하고 편안하게 다른 여성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미술가가 된 엠마에게 아델은 그림의 피사체이자 뮤즈로 분명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었다. 홈 파티가 끝난 후 엠마는 품에 안겨있는 아델에게 직업적인 것 이외에 창의적인 일을 해보라고 조언할 뿐 애정이 담긴 말들은 잘 해주지 않았다. 아델은 엠마에게 기대고 기대하는 것이 많은 사랑을 하고 있었지만 엠마는 아델에게 줄 수 있을게 그리 많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대비가 되었다.

차이는 결핍을 만든다

영화 속 두 여자주인공의 관계를 정리하자면 사회적 위치와 사랑의 의미의 차이는 그들 사이의 결핍을 만들었다. 홈 파티가 있던 저녁 밤 아델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양껏 만들어 사람들에게 덜어주고 있었다. 함께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엠마와 그녀의 친구들은 철학적인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성과 여성의 본질이나 오르가즘의 신체적 정신적 차이와 같은 심오한 주제로 말이 오고가는 와중, 엠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스파게티를 덜어주는 일만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로 평범한 삶을 지내고 있는 아델의 입장에서는 함께 떠들지 못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대화 속에서 웃고 있는 엠마의 모습에서 새삼 거리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델과 엠마는 ‘동상이몽’이라는 사자성어와 같이 같은 침실과 방 그리고 집을 공유하지만 그들 머릿속에 있는 사랑은 서로 다른 것을 주고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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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스파게티의 상징적 의미는 한국으로 따지면 라면보다는 밥에 가깝다. / 출처 : 다음영화

차이를 극복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아델과 엠마는 서로 다른 사회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차이는 다른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장점보다 서로 원하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단점이 더 컸다. 상상해보면 아델은 엠마로부터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자극들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엠마는 지금의 상황도 살필 줄 아는 능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의 가치를 공유했었다면 아델의 사랑은 이타적이면서도 자신의 삶도 혼자 가꾸어갈 수 있는 힘을 가졌을 것이고 엠마 또한 자신의 중심이 바로 선 상태에서 자기에게 기대는 사람도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사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낭만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의 차이는 서로를 점점 더 멀리 갈라놓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참고자료

  • 장영엽, “이것은 바로 당신의 이야기 입니다”, 씨네21, 2014.01.14, 링크
  • 서도은, “계급을 넘어 사랑하는 일 우리에게 얼마나 어려운가”, 씨네21, 2014.01.14,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