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랑 주제의 영화 과제 특집

  1. 사랑에 대한 순수한 욕망 - 콜미바이유어네임
  2. 계급을 넘어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3. 함부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춘기의 사랑 - 소녀의 세계

과제 특집이 뭐냐면

2022년 1학기 수강하는 과목 중에서 ‘인간과가족’이라는 제목의 교양 강의가 있다. 매주 한 편의 영화를 보고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수고스러운 강의이다. 중간고사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닌 대체 과제가 나갔는데, 제출일자도 다른 과목 시험기간을 피해 넉넉하게 주셨다. 주제는 사랑에 관한 영화 세 편을 엮어서 보고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말하시는 사랑이 흔한 로멘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퀴어, 고전, 원나잇 등 (…) 그런 유형의 사랑 주제를 말씀하셨다. 분량은 표지를 제외하고 7페이지 이상. 여러 책을 집필하신 교수님 답게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글의 길이가 상당했다.

영화를 선정하는 것 부터가 일이었다. 널린게 로맨스 코미디에 장르물인데 교수님이 원하는 사랑 주제의 영화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음 알아봤자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무작정 ‘퀴어영화’를 검색하고 영화 목록을 나열하는 글들을 뒤졌다. 느낌이 가는대로 골라봤는데 그래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니 주제는 동성애로 잡았고 이왕이면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영화를 골라보았다. 그리하여 선정된 세 편의 영화는 콜미바이유어네임 (이탈리아, 남성),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프랑스, 여성), 소녀의 세계 (한국, 여성) 으로 선정했다.

늑대 같은 남자

여자를 유난히도 밝히는 남자들을 보통 늑대라는 짐승에 비유한다. 늑대라는 동물 안에 부정적인 어조가 섞여 있긴 하지만 이성애자가 이성을 좋아하는 것은 동물적인 본능이기에 그 비유가 납득이 간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욕구를 드러내는 것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면 부정적으로 인식되곤 하나, 인간에게 사랑과 욕구의 결합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이후에 전에는 없었던 욕구가 생겨나기도 하고, 반대로 조금씩 자라나는 욕구들을 보니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순수한 상태 그대로 존재할 때 인간은 과연 어떠한 욕구가 샘 솟아오를까? 판타지스러운 그 모습을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이 잘 묘사하고 있다.

call_by_nm_poster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저 쨍한 배경이 이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과 비슷하다. / 출처 : 다음영화

영화 소개

이 영화는 1983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열일곱 소년 엘리오와 스물 넷 청년 올리버가 주인공이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고고학 교수로 여름을 맞이하여 가족과 함께 바닷가가 있는 휴양지로 나왔다. 그곳에서 보조 연구원으로 올리버를 초대하게 되고 그는 화장실로 이어진 엘리오의 옆방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올리버는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엘리오의 마음은 특별했다. 그것이 사랑임을 깨달은 엘리오는 처음에 부정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진심을 올리버에게 드러낸 후 서로는 같은 마음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 서로 사랑을 나누다 결국 이별로 마무리하게 되지만 조금씩 끓어오르는 엘리오의 감정은 아주 세심한 연출을 통해 묘사되었다. 엘리오의 감정을 통해 바라보자면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인간의 세 가지 욕망을 순수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육체에 대한 욕망

신체에 대한 시각적인 욕구

먼저 인간 누구나 갖고 있는 육체에 대한 욕망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크레마 (Crema)라는 곳으로 휴양지로 유명하다. 영화 속 장면은 항상 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으로 너무 화사해서 계절감각도 잊게 만든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모든 사람들은 얇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심지어 상의를 탈의하고도 자연스럽게 생활한다. 두 주인공인 엘리오와 올리버 또한 수시로 맨살을 드러내며 생활하였으며 정원에 있는 작은 풀장이나 바닷가, 호수에서 거리낌 없이 수영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밝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 피부색도 밝은 두 사람의 육체는 도드라지게 연출되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던 그들의 맨살은 시각적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며 서로를 충족시켜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공간과 계절의 설정에 대하여 이동진 평론가는 ‘세세한 태양광을 잡아내어 환하게 욕망의 세계를 펼쳐내고 두 주인공의 실내 관계 장면에서도 발코니를 열어놓는 등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 돋보였다’고 말하였다.

call_by_nm_nxde
유럽 사람들은 다들 지중해에서 저렇게 지내나보군. / 출처 : 다음영화

그 유명하다는 복숭아

육체적 욕망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표현은 복숭아라는 소재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복숭아를 먹으면서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엘리오는 복숭아를 보고 문득 사람의 뒷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복숭아의 씨를 빼내 구멍을 만들고 그의 손은 자신의 신체 아래로 향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원작 소설인 ‘그해, 여름 손님’ 에는 이후 장면에서 올리버가 찾아와 복숭아를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고 한다. 이는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영화제목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서로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입으로 전해지는 미각까지도 두 육체가 결합되고자 하는 욕망은 원초적인 사랑의 표현 그 자체였다.

call_by_nm_peach
저 장면도 유명하지만 소설이 더 대박이라고 한다. / 출처 : 다음영화

자기 만족의 욕망

영화에서 표현된 두 번째 욕망으로는 자기만족의 욕망이 있다.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동성애라는 것은 환영 받지 못 하고 있었다. 엘리오도 마찬가지였으며 자신의 감정을 확인한 직후 올리버에게 들이대지는 못하고 간접적으로 그의 주변에서 본인의 욕망을 스스로 채워 나갔다. 올리버 옆방에 사는 엘리오는 그가 외출한 틈을 타 소지품들과 옷들을 만지면서 그의 채취를 느꼈다. 그리고 곱게 놓여 있는 그의 바지를 보고 엘리오는 참지 못하고 올리버의 침대에 누워 바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비록 올리버는 지금 여기에 없지만 그가 남기고 간 냄새만이라도 한없이 느끼고 싶은 엘리오의 욕망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상대방 몰래 자기 스스로 채워나가는 욕망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도 나타난다. 집에서 올리버가 안 보이던 어느 날 엘리오는 자전거를 타고 집을 서둘러 나섰다. 동네를 돌면서 올리버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발견하게 되는데, 태연하게도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그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리고 올리버가 시내에 나서는 날이라면 황급히 엘리오도 마침 볼일이 있었다며 나가는 장면에서 풋풋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전해지기도 했다. 아직 올리버에게 마음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자신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는 엘리오의 욕망에게서 순수함이 묻어났다.

call_by_nm_cycle
둘이서 자전거 타고 평화롭게 돌아다니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 출처 : 다음영화

마음 확인에 대한 욕망

마지막으로 드러났던 사랑의 욕망은 상대방 마음에 관한 확인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의 욕망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확인한 엘리오는 올리버의 마음은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여태껏 올리버를 조금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주위만 맴돌던 엘리오는 미묘한 방법으로 그 마음을 떠보기 시작한다. 우선 그는 일부러 자신의 마음 반대로 올리버를 대하였다. 가족과 올리버가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넌지시 ‘나중에’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조금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서 넌지시 올리버의 말투를 비꼬아 보았다. 또 전날 밤 마을 축제에서 올리버와 춤을 추던 여성분을 대뜸 엘리오가 언급하면서 자신이 이어줄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속마음과 전혀 반대로 표현하면서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노심초사하게 살피는 엘리오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이번에는 그가 자신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해보았다. 그에게 말을 꺼내야 할 지 아니면 죽어야 할 지 고민하는 기사의 이야기를 담은 프랑스 문학작품을 언급하면서 엘리오가 물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것 같은 자신의 심경을 알아차려 주기를 속으로 바랬다. 그리고 역사를 매우 잘 안다는 칭찬을 한 올리버에게 대뜸 ‘하지만 저는 정작 중요한 건 모르는걸요’ 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함부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감과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불안감이 엘리오 마음속에서 존재하는 가운데, 올리버의 마음속이 너무나도 궁금한 엘리오는 자신의 욕망이 드러나는 것을 막지 않고 가만히 흘려보냈다.

call_by_nm_dance
동작은 자유롭지만 감정은 미묘하다. / 출처 : 다음영화

그의 사랑은 순수했다

이 영화에 대한 주된 비판 중 하나로 지극히 비현실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휴양지와 흐린 날 하나 없는 날씨는 지금 보이는 이 장면들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영화에서 가장 비 현실적인 점은 엘리오가 육체적, 자기만족 그리고 상대방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동안 갈등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설정하였던 환경들을 통해 주인공 엘리오는 마음껏 자신의 욕망이 자유롭게 새어나오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서 사랑에 대한 인간의 ‘순수한 욕망’ 이라는 역설적인 단어가 잘 어울렸다.

참고링크

  •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168] 1부. 샬라메와 헤지스(벤 이즈 백,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9.07.19, 동영상, 11:30, 링크
  • 서혜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복숭아 장면은 원작을 따라갔어야 했다”, Tailor Contents (블로그), 2018.03.26,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