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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주의: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냥 드라마 보다가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곳은 ‘이번 생은 처음이라’ (tvN, 2017)라는 드라마 속 이었다. 2020년에 넷플릭스에서 정주행을 했었는데 대한민국의 흔한 로멘스 코미디 장르 답게 재밌게 보았다. 이 드라마에는 흥미롭게도 영화, 시, 소설 등 여러 작품들이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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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장면 따려고 다시 보다가 재밌어서 정주행할 뻔  /  출처: Tving

여주인공(정소민)이 남주인공(이민기)에게 이 책의 줄거리를 조곤조곤 이야기 해줘서 나는 이미 이 소설의 결말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꽤나 신선한 스토리라 한번은 직접 글로 읽어보고 싶었다. 드라마를 본지 한참 지나고 나서 2022년 지금 이 책이 문득 떠올라서 도서관에 갔다. 드라마에 나온 그 표지의 책은 절판에다가 학교 도서관 보존서고에 소장되어 있었다. 다행히 2018년에 새롭게 출판된 책이 따로 있어서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단편 소설의 묘미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사거나 빌려서 읽어보았다. 평소에는 나에게 소설이라 함은 300페이지 정도에 한 번에 쭉 읽으면 5시간 정도 걸리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60페이지 정도 밖에 안 되었고 읽어보니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이렇게 작은 양 안에 스토리를 어떻게 채우나 싶었는데,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다 녹아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읽다보니 단편 소설 특징 몇 가지가 보였다. 먼저 인물과 상황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해 관계가 복잡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몇몇 주인공들의 깊은 사정까지 낱낱이 늘여놓진 않았다. 전반적인 내용이 적당히 간결한 느낌이었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내용 전개가 빠르다는 것이다. 소설 초반에 적당히 인물 배경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 본격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짧은 시간 안에 소설의 주제가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하고, 결말까지 한 호흡에 지나가버린다. 마지막 특징으로는 단편 소설이라도 같은 소설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소설이 끝나버렸음에도 다른 장편 소설을 읽었을 때의 그 여운이 남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이야기의 늪에 빠졌다가 나오는 기분이 비슷해서 신기했다.

19호실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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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출처: 알라딘

소설의 주인공은 수전이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아주 전형적이고, 이상적이며, 합리적인 결혼생활을 하였다. 부부관계는 물론 대인관계도 원만했으며, 자녀도 넷이나 갖고 있는 화목한 가정이다. 수전은 아이들을 보살피고자 직장을 그만두었고 자녀들이 모두 학교에 입학할 때 까지만 육아에 힘쓰기로 한다. 막내까지 학교에 들어간 후에 이제 수전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역할도, 어머니의 역할도 자신을 나타내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더욱 그녀다운 모습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급기야 일상 속에서 분노를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 정확한 원인은 알아내지 못 했다. 가사와 보육에 둘러 쌓인 그녀의 일상을 벗어나보고자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보고자 옥탑방에 방(어머니의 방)을 따로 마련해보았고, 그리고 혼자서 휴가를 떠나기도 해 보았다. 하지만 모두 실패. 아무리 노력해봐도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더러운 호텔 방 하나를 구해서 들어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에 저녁 식사를 하기 전 까지 낮 시간 동안 그 방에서 혼자 지내었다. 그 곳에서 그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는 것 만으로 그녀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게 자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그녀를 두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외도를 하고 의심하고 그녀의 뒤를 캐내어 그녀가 낮 시간동안 호텔에 머물다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마 그녀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온다고 말하지 못 한채 바람을 핀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다시 그 호텔방으로 돌아간 그녀는 혼자서 죽음을 맞이한다.

존재에 대한 불안

이 소설의 주인공인 수전은 이성적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양육에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기에 자신은 가정을 돌보는 역할을 맡고, 벌이는 남편이 담당하는 것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또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을 때, 자신의 존재 목적은 누군가의 아내 또는 누군가의 어머니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동안 그녀는 이성적으로 살아왔기에 안정된 결혼생활을 해왔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아내와 어머니 이외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지만, 어째서인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더욱 불안해졌다.

유별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삷을 살아온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결혼을 하여 누군가의 아내로 살고, 자식을 낳아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온 그녀는 온전히 그 역할들이 그녀 자신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타인을 통해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이 불완전한 일임을 인지하고 있는 그녀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는 곧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부부와 부모자식 관계에서 멀어지려 하면 할 수록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안함과 초조함은 더욱 더 커졌다.

철저히 혼자로 남아 독립된 자아를 찾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켰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이라는 틀을 벗어나려 하면 할 수록, 그 틀 안에 그녀의 모든 일상이 녹아있으므로 다시 그 틀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 마음처럼 잘 안되자 불안함과 초조함은 커져만 갔고, 그녀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간혹 짜증을 내었다. 마음 속으로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벗어나겠다고 수없이 다짐을 해왔지만, 이와 동시에 그녀는 자상한 아내와 따뜻한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미 그녀는 그 누구도 아닌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

수전은 고민과 생각이 참 많았다. 무엇이 언제부터 잘못되었나 싶어서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기도 하고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부터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있지만, 원인과 이유도 모르고 있기에 남들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홀로 호텔에 갈 때도 그곳에 간 사실이나 이유를 밝히는 일이 바보같은 행동임을 매우 잘 알고있다. 집에 돌아와 침실에 누워 자신의 고민을 남편에게 털어놓으려고 해도 자기 스스로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솔직해지지 못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성이라는 소재나 사회적 억압을 인상깊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내가 바라본 이 두 소설 속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남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아주 그럴듯 해 보인다. 겉으로는 아주 평온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내면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남들과는 다른 점이나 과거에 비해 나빠진 점들을 발견하고 설명할 수 있다면 남들에게 쉽게 공유할 수 있을 뿐더러 애초에 마음 속이 불안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마음 속 무언가를 다른 사람이 쓰다듬어 줄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불안한 수전의 내면을 지켜보던 나는 남편과 아이들은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그녀가 덜 불안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선 수전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될 지 생각해 보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으므로 항상 같은 태도로 수전을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전의 내면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기에 평소와 같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속으로 신경증적인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다. 즉, 곁에 있어주는 건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수전에게 괜찮은지 물어봐주고 속 마음을 서로 나누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수전은 자신의 비이성적인 내면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고 정제하여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진심이 아니라 거짓이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그 어떠한 공감도 그녀에게 통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녀의 이러한 속 마음과 행동들을 보면 과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는 속 이야기를 남들에게 잘 털어놓거나, 진심이 담긴 공감과 위로를 잘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그 타인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수전의 생각처럼 자신이 생각했을 때 이건 좀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감정들은 남에게 쉽게 꺼내지 않는다. 그리고 수전의 상황처럼 벗어날 수 없는 아내와 엄마 역할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는 타인들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바라만 보았을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만 생각해보면 ‘타인은 이해 불가능한 존재다’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엮어서 소설 읽기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철저히 목적론을 지향하는 그의 사상은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바뀔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 용기를 내면 답을 내릴 수 있는 고민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고민들은 인간관계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인간이 빈 우주 속에 홀로 존재한다면 고민 또한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타인이 존재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 고민도 사라질 테고 마찬가지로 인간은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수전이 갖고 있는 고민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와 어머니라는 정체성 문제는 남편과 아이들을 대하는 과정의 인간관계라고 바라볼 수 있다. 그녀가 느끼는 불안은 어떠한 아내 또는 어머니로 살아갈 지에 대한 고민을 과감히 없애버리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아무리 그녀가 독립적인 자아를 찾으려고 해도 자신이 갖고 있던 역할의 둘레는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러한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들러가 말 했던 것처럼 텅빈 우주 한 가운데 수전이 존재한다면 그녀의 불안은 해소되었을 것이다.

결혼과 자아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는 이 소설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다. 이 드라마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결혼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일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전에게 결혼이란 자아를 해체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비 이성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함과 동시에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배우자의 절반을 가지면서 절반을 내어주는 것은 둘이 합쳐 더 큰 힘을 낼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개인의 입장에서는 독립된 자아를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결론: 19호실 밖으로

도리스 레싱: 사실 나도 <19호실로 가다>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전 롤링스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단 한순간만이라도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 소설의 저자도 말했듯, 주인공 수전의 불안은 이성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수전 본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불안 중에서 가장 심각한 불안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일 것이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고민은 다소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부터 여러 철학자들이 생각해오던 아주 심오한 주제로서, 이 고민에 한번 빠지게 된다면 죽기 직전 까지도 아마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수전은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말이 자신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 한다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수전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억압’으로 인식하고 ‘고립’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독립되고 온전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했던 수전의 용기를 존경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은 19호실 같은 곳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19호실 밖에서도 자아를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