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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TBC

주의: 이 글은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 전후 인간관계 특집

  1. 다가오는 것 1: 친구는 또래 뿐만이 아니다
  2. 다가오는 것 2: 더 큰 갈등 속의 나
  3. 지나가는 것 1: 진짜 어른으로 살 시간
  4. 지나가는 것 2: 끝나버린 막내 역할

진주 작가의 30대란

20대 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을 가리키면서 사람들은 현실적인 청춘의 표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시기를 무사히 지나게 된다면 더는 이런 종류의 시련과 역경은 찾아오지 않게 되는 걸까? 드라마 <멜로가 체질 (2019)>을 보자. 주인공 ‘임진주’는 드라마 유명 작가 아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보조작가이다. 그녀의 나이는 어느덧 30살. 그녀의 성격은 윗사람에게 비위를 잘 안 맞춰 주려는 타입이다. 평소 유명 작가의 눈에 거슬리던 임진주는 해고를 당하게 되고, 밥벌이를 이어나가고자 독립하여 드라마 대본 공모전에 지원하게 된다. 마침 그 대본을 본 PD의 눈에 들게 되고 ‘서른되면 괜찮아져요’라는 그녀의 드라마 대본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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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주 작가 역할을 맡은 배우 천우희. 실제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란다.  /  출처: JTBC

그 때가 편했었지

그녀가 해고를 당하기 전에는 보조작가 무리 안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윗사람인 메인작가와도 나름 오래 일을 해왔고 이제 그녀도 중견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30대의 임진주 작가는 과거 자신과 다른 사회적 위치에 서 있다. 20대 때 그녀는 일할 기회만이라도 귀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 가운데 아직 손이 더 많이 가는 위치였을 것이고 본인이 부족한 부분들을 나날이 채워가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30대의 그녀에게서 이러한 모습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정신없이 살게 된다면 어느덧 정신을 차렸을 때는 30대가 되어있을 것이다. 20대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아래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들 위에는 든든한 3, 40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대들은 자신의 바로 윗세대와 소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게 되고 그리하여 내 일만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다. 30대는 안타깝게도 이제는 나 혼자만의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내가 이 일을 좀 해봤으니 신입이나 이 일을 처음 해 보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게 된다.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람이 30대 정도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도 분명 생긴다. 이제 누군가가 나를 믿고 의지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을 쉽게 나에게서 멀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20대와는 다른 30대의 관계가 개편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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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병맛 드라마가 나왔을까... 연출이 영화 '극한직업' 감독이란다.  /  출처: JTBC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처음으로 아랫세대를 맞이한 30대는 그 경쟁이 2배가 된다. 20대 때는 바늘 같은 사회 진출의 구멍을 헤쳐나가고자 안간힘을 썼고 그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 진입해서는 기성세대들에게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게 30대가 된다면 편해질 줄 알았건만 오히려 20대에서 위로 치고 올라오려는 세력들이 등장하면서 경쟁은 심화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은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언젠가는 따라잡겠다는 감정만을 갖고 살아왔겠지만 이제 그 당사자가 되어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20대들이 실력이 늘어나고 아직은 부족하긴 하지만 머지않아 내 실력을 따라잡으려니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30대들은 아마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임진주 작가 또한 보조작가를 탈출하여 메인작가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주적은 전 직장에서 그녀 바로 위에 있는 작가들이었겠지만, 이제 그녀의 상대는 그들을 모두 포함하고 심지어 어린 나이에 위로 치고 올라오려는 상대까지 포괄한다. 30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전보다 전혀 편하지 않음이 분명해 보인다.

결론: 지금, 이 순간을 느껴보자

새로운 과제의 연속

지금까지 20대가 될 때 다가오는 것과 20대가 끝나고 지나가는 것들을 알아보았다. 이 두 경계에 있는 시기들을 종합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우선 인생의 과제는 지루할 틈이 없이 계속 생겨난다는 것이다. 10대 때는 대학 입시, 20대 중반에 접어들어서는 입사, 그리고 30대 때는 이직 준비까지. 수능이 인생의 마지막 시험이 아니라 인생을 여는 시험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생의 다음 방향에 대한 과제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래 관계, 선후배 관계, 비즈니스 관계 그리고 연인 관계 등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형성하는 관계는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진다. 타인과의 관계 형성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 몰아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여러 관계를 맺지만, 여전히 내가 맺지 않았거나 맺어야 할 관계는 차고 넘친다.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또한 20대의 양 끝 경계 주위에 선 사람들의 마음에도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는 30대 회사 대표가 마음이 열일곱이면서 자신을 부러워하는 우서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개뿔. 하나도 몰라요 나도. 그냥 아는 척하면서 사는 거지. 마음은… 독일서 대학 다니던 스무 살 때랑 똑같은데, 세상이 생각하는 서른이란 나이에 맞게 대충 어른 흉내 내면서 사는 거예요. 모르긴 몰라도, 세상 어느 서른 살도 ‘나 어른이다!’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 없을걸요?” 우리는 어릴 적 막연하게 어른에 대해 동경을 한다. 그 나이가 되면 지금의 나하고는 다르며 더 앞서간 모습일 것이라고.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어서는 ‘예전에 내가 꿈꾸던 어른이 되어도 되나’하고 의아해한다. 앞서 볼 수 있었듯 인생의 시기마다 항상 새로운 과제는 존재한다. 처음 시도해보는 그 과제를 우여곡절 끝에 해결하면서 ‘다음번에 이런 과제는 안 해도 되겠지’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소원대로 그때의 그 과제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더 높아진 난이도의 과제가 새롭게 찾아온다. 새로운 과제 앞에 선 마음은 10대나 30대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같다.

20대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

20대는 당황해야 할 일도, 완벽하게 준비해야 할 일도 없다. 20대를 살아가면서 ‘나는 이제는 10대가 아니야!’ 내지 ‘나는 곧 30대가 돼’라고 쉽게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항상 새로운 과제가 나오고 그 앞에서는 항상 떨리고 설레기 때문이다. 20대의 과제를 완벽하게 해내었다고 해서 10대가 바뀌지도, 그렇다고 30대를 완벽하게 준비한 채 살아갈 수도 없다. 과거는 과거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2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느껴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처한 어려움, 해결하려는 문제, 생각하는 고민 등 지금 20대를 살고 있어서 경험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이러한 것들을 너무 넓게 바라보지 말자. 마치 ‘이 문제는 10대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어’ 라든가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30대 때도 고생할 거야’와 같이 보지 말아야 한다. 다만 그저 하루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고 그 시간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면 20대를 참 잘 보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