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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

주의: 이 글은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 전후 인간관계 특집

  1. 다가오는 것 1: 친구는 또래 뿐만이 아니다
  2. 다가오는 것 2: 더 큰 갈등 속의 나
  3. 지나가는 것 1: 진짜 어른으로 살 시간
  4. 지나가는 것 2: 끝나버린 막내 역할

일어나보니 서른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2018)>에는 몸은 서른이지만 정신은 열일곱인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우서리’로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잘해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수재였다. 학교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열일곱이라는 나이에 의식을 잃은 그녀는 장장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병실에 누워 있게 되고, 눈을 뜬 순간 거울에 비친 나이를 먹은 본인의 모습에 놀라게 되고 다급한 마음에 병실을 뛰쳐나오게 된다. 자신이 살던 집으로 찾아갔지만, 주인이 바뀐 지는 오래. 그녀를 찾는, 또는 그녀가 찾을 수 있는 가족 또한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자신이 살았던 집으로 찾아가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 한 칸을 얻어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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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서리 역할을 맡은 신혜선. 정말 배역을 잘 소화했다.  /  출처: SBS

아직 마음만은 열일곱인 우서리에게 서른이라는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당장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에 지원해 보지만 거절당한다. 그녀가 자신 있어 하는 바이올린 수상 이력을 내세우며 관련 직종을 찾아보아도 중고등학교 때의 경력으로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열심히 하겠다고 잘할 자신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매달려봐도 돌아오는 답변은 같을 뿐 좀처럼 그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노력보다는 실력으로

20대를 건너뛰어 버린 우서리에게 사회가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녀는 사회인의 태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이 먹히는 때는 10대가 마지막일 것이다. 어른의 측면에서 볼 때 10대들은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들의 열정만을 사람을 판단하는 데 척도로 활용했을 것이다. 20대로 접어든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양한 분야와 수준으로 인생을 저마다 살아가게 될 수 있으니 이제부터 남을 평가할 때 열정보다도 그 사람이 실제로 가진 능력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우서리는 자신은 30대로 평가받는다는 것을 까먹은 채 어리숙한 마음으로 사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을 뿐이다.

10대는 먼 옛날 이야기

우서리가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점은 30대인 그녀가 10대 때의 과거를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남다른 바이올린 연주 실력으로 전국 대회와 같은 큰 무대까지 선 경험이 있다면 분명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재능을 가졌기에 바이올린 연주와 관련된 일을 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라는 것은 잠재력과 같은 의미로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지, 무조건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10대의 시기가 잠재력으로 평가받을 시기라면 이제 20대부터는 성과로 그 잠재력을 증명해 보일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는 나중에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보다도 지금 당장 좋은 결과물을 가졌는지 아닌지만 중요하다. 20대라면 차곡차곡 쌓아둔 이러한 결과물들이 한 보따리 갖고 있을 것이다. 이제 꾸준히 모아 둔 사회에서 평가받은 나의 결과물들을 가지고 30대가 되어서는 또다시 종합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서리는 20대의 성과들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10대 때 유망했다는 지나가 버린 이야기 하나만을 손에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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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서리의 취업 성공의 비결, 달토끼  /  출처: SBS

잠재력보다는 결과로

20대가 10대 때의 가능성을 먹고 자랐다면 30대는 20대 때 쌓아둔 결과물들을 먹고 산다. 10대 주변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과 같이 온통 잘할 것이라고 꾸준히 격려만 해 주는 사람들만 존재한다. 그것은 전혀 가식적인 것이 아니다. 10대라는 미숙한 청소년에게 지금 당장 성과를 가져오라고 압박하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30대가 되어서는 전혀 반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능력은 20대를 보내는 동안 길렀어야 했고 그 능력들을 증명할 결과물 또한 갖고 있어야 한다. 만약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결과물이 없다면 그동안 뭘 했냐, 도대체 왜 시간을 낭비했냐는 등의 따끔한 질타만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우리는 과거를 먹고 산다. 하지만 30대는 20대라는 정해진 시간만큼의 과거로 평가받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