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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laylist

주의: 이 글은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 전후 인간관계 특집

  1. 다가오는 것 1: 친구는 또래 뿐만이 아니다
  2. 다가오는 것 2: 더 큰 갈등 속의 나
  3. 지나가는 것 1: 진짜 어른으로 살 시간
  4. 지나가는 것 2: 끝나버린 막내 역할

20대 전후 인간관계 특집이 뭐냐면

지난 중간 대체 과제 에 이어 기말 대체 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주제는 ‘관계의 재구성의 한 챕터를 쓴다고 생각하고 써와라’라고 하셨다. ‘관계의 재구성’이라는 것은 인간 관계에 대한 책이다. 주요한 시기나 관계 그리고 믿음, 사랑, 애착 등과 같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전개방식은 다양한 영화나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경험을 통해 저자의 주장을 설명하고 있다. 제대로 과제를 하려면 관련된 책이나 영화들을 직접 보고 글을 써야 했지만… 하필 과제를 제출하는 날에 조별 발표를 하는 날이라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동안 봤었던 드라마들을 소재로 삼기로 했다.

서론: 기대, 실망 그리고 후회

멋진 대학생의 삶이란…

나에게는 아직도 스무 살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다. 그럴듯한 이름의 전공과 교양 강의를 듣고, 그럴듯한 전공 서적과 책들을 펼쳐 놓고 과제를 하는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보다도 더 동경하던 모습은 갓 성인이 된 나 자신이었다. 매일 밤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그다음 날 시체와 같은 표정으로 강의를 듣는 모습 또한 나에게는 낭만적인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고상하고도 망나니 같은 대학생에 대한 로망은 고등학생 때부터 꿈꿔왔고, 지금까지도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내가 10대 때 상상하던 그 모습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비교해보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매운맛

직접 20대가 되어보니 꿈꾸던 일들을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지도 못한 시련들이 더 많이 겪었다. 처음 겪었던 방황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입시 만을 보고 살아왔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어보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족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서 생활하면서 주변에는 동기와 선배와 같이 처음 보는 사람밖에 없다는 현실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군대를 다녀오니 벌써 20살 중반에 접어든 내 나이에 내가 더 놀랐다. 눈을 떠 보니 동기들은 하나둘 졸업하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화석’ 소리를 들으니 내가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싶었다.

아 이러다 큰일나겠다

그렇게 순식간에 20대가 지나버린다면 나는 지금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담배 연기를 머금거나 술잔을 기울이면서 나의 20대 청춘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아마 곱씹어볼 것이다. 미래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20대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라는 걸 지금 당장 깨닫는다고 해도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아니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아직 20대 당사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쾌한 답변은 스스로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다가오는 것들, 지나가는 것들

상상하던, 그리고 후회 없는 20대를 보내기 위해 20대가 되기 전과 그 이후를 살펴볼 것이다. 인생은 연속된 시간이므로 20대 그 자체만을 살펴보는 것이 아닌 10대와 30대 사이라는 커다란 맥락 속에서 20대를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10대~20대, 그리고 20대~30대 경계의 주변에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통해 20대가 되면 다가오는 것들과 20대가 끝난다면 지나가는 것들을 생각해 볼 예정이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그럼 그 사이에 있는 20대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답을 찾아볼 것이다.

다가오는 것 1: 친구는 또래뿐만이 아니다

최고의 하이틴 드라마

먼저 우리의 10대를 되돌아보자. 그 시절 기억을 되살려본다면 지금 20대의 모습에서 달라진 점들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말 ‘학교’ 시리즈, 2000년대 초 ‘반올림’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면 2020년에는 누적 조회 수 4억 8,000만을 기록한 웹드라마 ‘에이틴’ 시리즈를 빼놓고서 10대를 이야기할 수 없다. 방영 당시 10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드라마 주인공, 대사, 굿즈(소품) 등 드라마 속 모든 것에 열광했다.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TV에 나오지 않는 드라마 OST가 음원차트 1위에 올랐고, 제작사는 이 흥행을 계기로 외부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웹드라마 <에이틴 시즌 1(2018)> 은 18살 고2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열일곱도 아니고 한창 수험생활 중인 열아홉도 아닌, 고등학교 시기를 통틀어 사람들이 가장 적당하다고 말하는 18살 학생들이 보내는 일상생활에는 10대의 특징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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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드라마 에이틴 시즌 1. 2020년대 10대들의 현실 고증이 완벽하다.  /  출처: 플레이리스트

김하, 도하, 여보

드라마 속 서연고등학교에는 ‘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이 두 명이 있다. 먼저 ‘김하나’는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의 성적에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모든 남학생이 선망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도하나’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학교에서 잠만 자는 학생이지만 사실 속마음으로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둘과 함께 친구인 ‘여보람’. 그녀의 꿈은 프로게이머로 공부보다는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소녀이다. 세 여학생은 모두 같은 반으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도 서로 진하게 붙어 다니는 사이이다. 어느 날 김하나는 도하나와 여보람이 주고받은 SNS 댓글을 보게 되었다. 미술학원에 다니는 김하나를 제외하고 그 둘은 같은 학원에 다니고 있어 더욱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미묘한 소외감을 느끼게 된 김하나는 이 둘에게 함께 영화 보러 가자고 약속을 잡는다. 그리고 약속 당일. 다른 친구로부터 그 둘이 전날 밤에 그 영화를 보러 갔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고 김하나는 이 둘에게 실망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학교에서 김하나는 이 둘을 만나 영화 보러 가기로 한 약속을 취소한다고 차갑게 말하고, 이들의 대화는 점점 날카롭게 변하게 된다.

사실 도하나는 김하나에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름이 같아 항상 남들에게 비교당하고, 김하나는 당당하게 미술 입시를 준비한다고 말하지만 도하나는 비교당하는 시선이 싫어 숨기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보다 도하나가 가장 크게 열등감을 느끼는 점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그녀가 짝사랑하는 ‘하민’이라는 같은 학교 남학생이 김하나랑 가깝게 지낸다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이 둘이 서로 잘 어울린다면서 연인으로 몰아가는데,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도하나는 김하나에게 시기 어린 감정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다. 차갑게 굳어가는 이들의 사이를 해결한 건 다름이 아닌 여보람이었다. 그간 공부 못한다고, 여자라고 집안에서 차별을 받아왔던 감정에 북받쳐 ‘우린 세 명이라서 두 명이 싸우면 한 명은 꼭 나가리 된다고…’라고 하면서 울기 시작한다. 이에 당황한 김하나와 도하나는 우는 그녀를 위로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오해를 풀고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오게 된다.

인간관계는 또래가 전부

서운해하고 다시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10대들의 인간관계는 또래 관계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면서 그들이 서로 친구가 되는 이유로 그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크다. 이러한 관계는 생각해보면 스스로 정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같은 학교에 배정을 받았고 우연히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학원에 다니는 일도 학생의 의견보다는 대부분 부모님의 입김에 의해 정해진다. 이처럼 외적인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10대들은 인지하지 못 한다. 대신 10대들에게 친구가 된 이유가 ‘서로 잘 맞아서’라고 오해를 한다. 서로 잘 맞는 사이인 것은 당연하다. 나이도 같고, 생활하는 동네도 거기서 거기고, 관심사나 취미 또한 그 나이대의 코드로 대부분 맞추어져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위주로 관계를 쌓아왔으니 그들이 생각하는 친구 사이라는 것은 ‘나와는 닮은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비슷한 건 같은게 아니다

‘그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야’라는 편견은 인간관계에서 오해와 균열을 만들어내기 쉽다. <에이틴 시즌 1>에서 김하나는 여보람과 도하나가 서로 더 친하다고 생각을 했다. 이는 김하나 그녀 자신이 이제는 그 둘에게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왜냐하면 그녀가 생각하는 친구 사이라는 건 무조건 모든 관계의 구성원들이 서로 같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보람과 도하나는 김하나에게 말도 없이 둘이서만 영화를 보았고 김하나 입장에서 이는 그녀에게 절교 선언과 같았다. 하지만 속 사정은 달랐다. 여보람은 도하나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졸랐고 김하나도 부르자고 제안한다. 영화 제목을 본 도하나는 김하나는 이 영화를 싫어할 것이라면서 다음 날에 셋이서 김하나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은 둘이서만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도하나는 그녀 스스로 김하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김하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서 싫어하는 영화 대신, 그녀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셋이서 함께 보러 가자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결국 도하나 또한 친구인 김하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시작했고 ‘내가 이만큼 그녀를 배려했으니 그녀도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이일수록 그 틈에서 보이는 차이는 더욱더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차이를 혼자서만 발견한 김하나는 인간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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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은 보러 왔다가 신예은 보고 감.  /  출처: 플레이리스트

또래 관계를 넘어

10대 때 협소했던 인간관계의 정의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한다. 내가 새내기 때 가장 놀랐던 점은 동기들의 나이였다. 우리 과에서는 20살인 사람보다 20살이 아닌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나이대부터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였으면 ‘저 형이 1년 꿇은 분이라며?’라고 하면서 한 살 차이가 나는 사람만 봐도 수군댔겠지만, 동기 중에는 타 대학을 졸업까지 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후 다시 입학한 분도 계셨다. 20대로 접어드는 인간관계에서 나이라는 스펙트럼 이외에도 ‘이해관계’라는 스펙트럼 또한 확장된다. 10대에게 인생의 목표란 어른들의 통제 속에 ‘성인이 되는 것’ 내지 ‘대학생이 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면, 20대들에게는 저마다 생각하는 인생의 목표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남들과 다른 만큼, 남이 생각하는 것 또한 나와는 다르겠지’라는 사실을 20대부터 본격적으로 깨닫기 시작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릴 줄만 알았던 10대들은 20대가 되어서야 다양한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