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창동 컬렉션

이번 여름방학에는 그동안 미루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는 중이다. 그 중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보기가 있다. 2018년에 대학교 교양강의에서 영화 ‘시’ (2010)를 접하고 그 감독의 세계가 궁금해서 데뷔작인 영화 ‘초록물고기’ (1997)과 ‘박하사탕’ (1999), ‘밀양’ (2007), ‘버닝’ (2018)까지 보았다. 이제 이창동 감독의 네임드 작품 중에서 안 본건 ‘오아시스’ (2002)만 남았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번에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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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아시스. 2002년 작이다.  /  출처: 다음 영화

평균 이하의 이야기

이창동 감독답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평범하진 않다. 남자 주인공인 설경구 (종두 역) 는 음주운전 뺑소니로 2년 6개월의 형을 살다 나왔다. 순수함과 어리석음 그 사이에 있는 듯한 그는 주변인들은 물론 가족들 조차 그를 대놓고 멀리한다. 그는 인생을 막 사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이리저리 싸돌아다니질 않나, 카센터 수리하다가 손님 차를 밖에 몰고 다니질 않나. 눈치를 전혀 살필 줄도 모르고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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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 출소한 설경구. 여름에 들어가서 반팔을 입고 있단다.  /  출처: 다음 영화

여자 주인공 문소리 (공주 역)는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말, 표정, 몸짓 모두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다. 설경구와의 연결고리는 그가 교통사고를 낸 딸이 문소리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오빠네 부부랑 함께 살았는데, 그녀의 오빠는 그녀 명의로 아파트를 구입하고 이웃에게 월 20만원에 그녀를 맡긴 채 떠났다. 그녀는 남들처럼 특별할 것이 없는 일들을 하고 싶어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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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소리. 뼈가 뒤틀리는 노력으로 저 역할을 소화했다.  /  출처: 다음 영화

이런 그들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다. 설경구가 교통사고 피해자 집을 찾아갔을 때 우연히 문소리 혼자 집에 남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겁탈하려고 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문소리는 설경구를 다시 찾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데이트를 시작한다. (…음…) 휠체어를 끌고 길을 나서는 그들은 행복하기만 하다. 여전히 눈치가 없는 종수는 그녀와 지하철도 타고, 식당에도 들어가고 (곧바로 쫓겨나긴 했지만) 심지어 어머니 생신 때 그녀와 함께 찾아가기도 했다 (물론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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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신에 가기 전 그들. 예쁘게 차려입는 중이다.  /  출처: 다음 영화

그들을 보면 감정 이입이 쉽지가 않다. 영화를 보면서도 가끔씩 미간이 좁아지기도 하며, 아무리 영화의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떻게 영화 주인공으로 저런 사람들을 내세웠을까? 이건 철저히 이창동 감독의 의도이다. 감독은 설경구와 문소리의 삶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너무 현실적인 나머지 알고는 있지만 모른 척 하고 싶은 일들까지 모조리 보여주고 있다. 불쾌한 기분이 들긴 해도 비현실적이라곤 말을 못 한다. 그들은 결코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이나 비열한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사람 눈에 거슬릴 뿐이었다.

평균의 이야기

전과 3범 설경구와 중증 뇌성마비 문소리를 둘러싼 사람들을 보자. 사람들은 설경구를 보이는 그대로 대한다. 음주운전에 강간 미수까지 아주 죄질이 나쁜 그를 사람들은 갱생 불가로 여긴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이 사회에서 그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문소리에게는 사람들이 예의 있게 말을 건다. 하지만 그 행동과 내용에는 그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눈과 귀는 멀쩡한 그녀인데 사람들은 그녀가 잘 표현하지 못 한다는 이유로 물건에 가깝게 대한다. 그녀를 위해서 하는 일은 그저 밥이나 먹이고 옷이나 입혀주는 일 밖에 그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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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끌려온 설경구. 그 형과 동생은 합의는 고사하고 깜빵에 넣고 싶은 심정이다.  /  출처: 다음 영화

우리에게 설경구와 문소리를 각각 전과자와 장애인일 뿐이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그들을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고만 표현한다. 이창동 감독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건, 참 이런 감정이 들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주인공들을 ‘짠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이 동정이라는 것은 절대로 공감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나보다 좀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엾이 느끼는 감정이다. 나와 그들을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터 이 현실적인 영화는 나의 깊숙히 숨어 있던 오만함을 드러낸다.

영화는 끊임없이 불편한 진실들을 보여주고 그럴 때 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갖고 있는 편견들을 자극시킨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긴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가해자가 되기 시작한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는 것 자체만으로 영화의 관객들은 한 순간에 공범이 된다. 그렇게 보통 사람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게 바로 이창동 감독의 전형적인 연출이다.

사랑 이야기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의 다른 영화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과는 다르게 이 영화를 멜로 드라마라고 하였다. 이제 그 장르에 현실성을 가미한 것이다. 그는 ‘사랑이란 상대방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설경구와 문소리는 함께 현실적인 판타지를 채웠다. 서로 같이 다니는 일 (+여기에 휠체어와 함께), 함께 밥을 먹는 일 (+식당에서 쫓겨나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먹는 일), 애정을 표현하는 일 (+ 어눌해서 전달도 잘 안 되지만). 남들이 볼 때 저게 어떻게 판타지인가 싶겠지만 그들이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판타지가 바로 이러한 일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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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데이트. 낭만... 적이겠지?  /  출처: 다음 영화

‘왜 설경구와 문소리와 같은 주인공이어야만 했는가’라는 물음에 이창동 감독은 그들의 사랑이 사랑의 본질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을 서로 잘난 사람들 끼리 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끼리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면, 사랑은 본질적으로 가장 추한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게 감독의 생각이다.

결론: 상식이란 무엇인가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다. 평균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운전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그런 우리에게 이 영화를 통해 큰 울림을 선사했다. 평균 이하의 주인공들을 내세움으로서, 우리의 평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 내내 지속된 불편한 감정은 자꾸만 주인공들의 문제점들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맞았고 그들은 틀렸는가?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건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에 쉽게 답하지 못 한다. 영화 ‘오아시스’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세상의 감추어진 민낮을 현실적으로 드러내었다. 결국 이 영화의 메시지는 우리의 상식에 관한 물음이다.